미국의 독립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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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 산업화


하지만 새로운 러시아로 향하는 움직임은 끝임없이 이뤄졌습니다. 알렉산드로 2세가 다양한 방면에서 개혁을 시도했지만 국민의 대다수인 농민들의 삶은 바뀐 점이 없고 이로인해 불만은 커져갔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브나로드 운동을 통한 계몽의 방법이 실패로 끝나자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밀 조직을 만들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암살과 테러로 차르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사람들과 노동자를 주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차르가 이끄는 전제 정치는 심각한 도전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지식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변화보다 즉각적인 사회 혁명을 원했습니다. 유럽의 사회주의가 노동조합이나 노동당 같은 합법적인 기구를 통해서 시민운동과 손을 잡았다면 러시아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차르만 암살되면 전제 정치가 무너질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이들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차르 암살 시도가 잇달아 일어나자 귀족들은 알렉산드로 2세를 설득해서 검열 제도를 강화하고 개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간섭은 개혁을 통해 조금씩 발전하며 평화로운 근대화로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아 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 알렉산드로 2세는 혁명 운동을 하던 청년이 던지 폭탄에 의해 암살되고 맙니다. 그러자 다음으로 등장한 알렉산드로 3세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더욱 철저한 억압 정치를 펼치기로 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니콜라이 2세도 사상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혁명 운동을 진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도 새로운 러시아를 갈망하는 시대의 요구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1890년대 말부터 반정부 세력은 이전보다 더욱 조직화하였으며 러시아의 자유화 운동은 점차 고조되어 혁명의 길로 들어서는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독립 산업화

 


미국의 독립
1801년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의 세 번재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독립 선언문을 쓴 대통령답게 연방 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국민이 권리를 많이 갖도로 했습니다. 민주주의 공화국 완성의 순간입니다. 그후로 2년뒤에는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지역을 싼 가격에 사들이면서 미국 땅은 두 배로 넓어졌습니다. 루이지애나는 당시 프랑스의 탐험가가가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역이였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서부로 뻗어 갈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812년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을 하면서 바다를 봉쇄하여 미국의 배를 공격하고 무역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미국이 영국에게 밀렸습니다. 영국군은 수도 워싱턴까지 밀고 들어와 대통령 관저와 정부청사들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앤드루 잭슨 장군이라는 사람이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전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1814년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최강국 영국에 맞서 당당히 승리함으로써 자부심과 함께 결속력이 더욱더 단단해 졌습니다. 1823년 제임스 먼로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먼로주의라는 외교 원칙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유럽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더 이상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새로 독립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 대한 간섭도 미국에 대한 적대 행위로 여길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세력을 진입한 유럽은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모든 것을 돌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시대로 되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유럽을 향해 이같이 선언했던 겁니다. 미국의 산업화는 빠르게 진행되어 어느 유럽나라 보다 발전속도가 빨랐으며 거대한 시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대신 미국의 간섭을 받게되었습니다.



1828년 영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앤드류 잭슨 장군은 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는 첫 서민 출신 대통령으로 민주주의 시대와 미국 팽창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독일과 아일랜드 등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서부의 새로운 땅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서부에 살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졸지에 땅을 빼앗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인들은 땅을 넓혀 갈수록 인디언들과 계속해서 충돌했습니다. 여러 차례 전쟁이 벌어졌지만 번번이 미국인들이 이겼습니다. 1830년에는 인디언들을 강제로 서쪽으로 이주시키는 법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1838년 남부에 살던 체로키족 인디언들도 멀고도 험한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길을 떠나는 도중에 많은 인디언들이 극심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으로 죽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1300킬로미터의 먼 길을 떠나 낯설고 낯선 땅에 인디언들이 도착하였을때 길을 더나온 인디언들의 약 4분의 1정도가 목숨을 잃을정도로 그 현장은 참혹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인디언들에게 걸어온 길을 눈물의 길이라고 불려졌으며 인디언들의 이주와 저항은 그후로 1886년까지 계속 되었답니다.



미국의 산업화, 발전
미국 땅이 넓어지자 이제는 각 지역을 연결해 줄 교통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에서는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미국 각지로 운반해야 했습니다. 1807년에 등장한 증기선은 허드슨 강에서 승객을 태우고 이틀간 뉴욕에서 240킬로미터 떨어진 올버니까지 운항에 최초로 성공하였습니다. 미국의 발명가 로버트 풀턴이 증기 기관을 배에 달아 세계 최초로 상업 목적의 증기선 클러몬트호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강과 강을 연결하는 운하도 건설되었습니다. 덕분에 운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이 줄어들었으며 운하와 오대호 주변에 공장이 많이 세워지며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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