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산업 혁명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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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 혁명을 일으키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리버풀 항구는 수많은 사람들과 정박한 배들로 붐비는 항구였습니다. 영국으로 들어오는 배에는 목화가 실려 있고 외국으로 나가는 배에는 면직물이 잔뜩 실려 있었어요. 면직물은 근처의 맨체스터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맨체스터는 산업 혁명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으로 목화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면직물이 잔뜩 실려 있었습니다. 영국의 면직물은 세계로 팔려 나갔습니다. 원래 영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주로 농사를 짓고 소와 양등의 가축을 기르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 유럽에는 내로라하는 강대국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이러한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났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8세기 무렵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왕들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17세기에 명예혁명이 일어나 왕과 의회가 권력을 나누고 법을 따라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도 보장되었던 곳이 영국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뒤늦게 시민 혁명 등으로 혼란했던 반면에 영국은 안정된 정치와 사회를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킬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철과 석탄 등 지하자원도 풍부했습니다. 철은 기계를 만들고 석탄은 기계를 움직이는데 필요했습니다. 또한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는데 식민지국가들에게서 원료를 가져오고 그 원료로 만든 물건을 식민지 사람들에게 팔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영국은 안정된 사회, 풍부한 자원과 자본 덕분에 산업이 발전할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영국 산업 혁명을 일으키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영국은 유럽에서 제일가는 양털 생산국이였습니다. 초원에서는 소, 양,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영국에는 양이 많아서 일찍부터 양털로 만든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땅은 몇몇 귀족들 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은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 주어 농사를 짓게 할 뿐 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면서 영국산 모직물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 잘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모직물은 품질이 뛰어나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모직물 수출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자 지주들은 양을 키우려고 농민들이 농사짓던 땅을 목장으로 바꾸고 울타리를 쳤습니다. 15~17세기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농사를 짓던 주인 없는 땅에도 울타리가 쳐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제1차 인클로저 운동이 되겠습니다. 인클로져란 울타리를 두른다라는 뜻입니다. 지주들은 울타리를 두른 땅에 양을 키우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반면 하루아침에 땅을 잃은 농민들이 곳곳에서 들고일어났습니다. 18세기 초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곡물 가격이 오르자 농촌이 다시 들썩였습니다. 지주들이 그나마 남아 있던 마을 공유지나 황무지에 울타리를 치며 자기 땅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고 기계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제2차 인클로저 운동입니다. 이 일로 수많은 농민들이 살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또한 농사에 쓰이는 새로운 기계가 발명되고 농업 기술이 발달하자 일할 사람이 많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인클로저 운동으로 땅을 잃고 쫓겨난 농민들은 대규모 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업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물려들면서 영국의 공장에는 일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산업화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17세기 영국에는 아시아에서 면직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인도에서 들여온 면직물은 양털로 만드는 모직물보다 값도 훨씬 저렴하고 무게도 가벼웠습니다. 

 

옷감의 질도 좋고 빨래하기도 쉬었습니다. 이로인해 면직물의 인기가 하늘 높을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면직물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면직물은 사람손이 너무 많이 가는것이 유일한 단점이었습니다. 일일이 실을 교차시켜 옷감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존 케이는 옷감을 빨리 짤 방법을 고민하다 1733년 드디어 자동을 실을 교차시킬 수 있는 기구인 플라잉 셔틀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쉽고 빠르게 옷감을 짤 수 있게 되었고 플라잉 셔틀은 날개 돋친 듯 팔려갔습니다. 존 케이의 기술은 본격적인 기계의 등장이자 곧 산업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실이 부족했습니다. 옷감 짜는 속도에 실을 뽑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그리브스는 1767년 실을 뽑는 기계 제니 방적기를 발명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방적기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더욱 튼튼한 실을 빨리 만들 수 있었습니다, 1769년 아크라이트는 물이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수력 방적기를 발명하였습니다. 그 뒤 1779년에 크럼프턴이 제니 방적기와 수력 방적기의 장점을 모은 뮬 방적기를 개발하였습니다. 이처럼 좋은 기계들이 잇따라 발명되자 영국의 면직물 공업은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을 이제 사람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면직물을 집이나 작은 공장에서 소규로모 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큰 공장에서 방적기들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각종 편의기계들이 개발되면서 바햐흐로 산업혁명이 일찍 앞당겨 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좋지 못했습니다. 이로인해 일손을 놓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산업혁명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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