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국가

반응형
반응형


전체주의 국가



뉴욕 대공항 사태로 인해 세계 여러나라가 경제적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과 식민지가 많고 경제가 발달한 미국, 영국, 프랑스 3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적 기반이 약했던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의 국가들은 대공항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미국이 투자했거나 빌려주었던 돈을 거두어 가자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로인 개인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보다는 국가와 민족 전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전체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들 나라들은 침략 전쟁을 통해서라도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체주의 국가의 첫 주자는 바로 이탈리아가 되겠습니다. 다들 독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였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세 나라의 대외 침략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내는 것보다 국가의 명령에 고분고분 다르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전체주의 성립한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토 확장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는 약속을 받고,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 맺은 3국 동맹에서 빠져나와 연합국이 편이 되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


결국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승전국으로서 많은 혜택을 기대하였지만 돌아 온 것은 오스트리아의 영토 일부분뿐이었습니다. 때문에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만들어진 베르사유 체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생긴 엄청난 빚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로인해 노동자와 농민들이 파업과 폭동을 자주 일으켜 사회가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은 이탈리아는 자본가를 비롯한 중산층들은 이탈리아가 재산의 공동 소유와 무계급 사화를 추구하는 공산 국가가 될까 봐 두려워 했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를 막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 줄 정치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때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이념으로 한 파시스트당을 만들고 지지 세력을 늘려 갔습니다. 파시즘은 단결, 결속,을 뜻하는 파쇼에서 나온 말로 국가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이념이 되겠습니다. 공산주의 성장을 두려워한 자본가, 귀족, 지주들은 점차 파시스트당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면 지금의위기를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 사람이 무솔리니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1922년 무솔리니는 군대를 일으켜 국왕이 있는 로마로 진군하여 총리가 되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무솔리는 이후 파시스트당만 남기고 다른 정당은 모두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여 일당 독재 체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무솔리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국가를 떠나서는 인간과 영혼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주장하였습니다. 이탈리아에 이어 강력한 전체주의 국가 독일과 일본이 탄생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패한 독일은 해외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을 모두 잃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게 되자 그야말로 나라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화례를 마구 발행하여 돈의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엄청나게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미국의 지원과 투자로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어 가던 중 대공항으로 인하여 국내에 투자되어 있던 자금들이 빠져나가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히틀러였습니다. 이가 이끄는 나치스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나치스는 급속히 세력확장에 나섰으며 그 규모가 커졌습니다.

나치스 : 히틀러가 이끌었던 독일의 파시즈 정당으로 독일 민족을 으뜸으로 삼는 독일 민족 지상주의와 강력한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유대인을 경멸한 반유대주의 사상을 내세웠습니다. 나치스는 우리를 괴롭히는 베르사유 체제를 거부하고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겠습니다. 국민이 모두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이에 독일에 국민들은 히틀러의 강한 리덥십이 어려움에 처한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 믿고 의지했습니다. 독일 민족 우월주의자인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반유대주의를 내세워 전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1932년 선거를 통해 나치스는 제1당이 되었고 이듬해에 히틀러가 수상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나치스에 반대하는 당을 탄압해서 해산시키고 나치스 독재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힌텐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히틀러는 스스로 총통이 되어 독일 제국의 부활을 선언 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재무장을 선언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전개되는 동안 유럽 여러 나라에 전쟁에 필요한 물건을 팔아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연합군 편에 서서 전쟁을 치러 큰 피해 없이 승전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블록 경제를 시행하자 일본은 다른 나라에 물건을 수출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이로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의 경제 구조는 원자재를 수입하고 그것을 가공해서 수출하는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실업자가 증가하고 사회불안이 심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농산물값도 떨어져 농민들의 불만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정권을 잡은 군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군군주의를 더욱 강화하기에 이릅니다. 군국주의는 군사력을 키워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여 대외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생각입니다. 군부 정권은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를 차치해야 문제가 해결 될거라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반응형

'세계사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계천 크리스마스 축제  (0) 2022.05.01
제국주의 등장  (0) 2022.01.31
제 3세계 중립 국가  (0) 2022.01.29
프랑스의 역사 나폴레웅 법전  (0) 2022.01.28
인도 여행, 인도의 역사  (0) 2022.01.27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