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사 나폴레웅 법전
- 세계사 한국사
- 2022. 1. 28.
프랑스의 역사 나폴레웅 법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왔을때 나라는 엉망진창이였습니다. 국민들의 불만도 켜져갔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폴레옹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세명의 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 새로운 통령 정부를 세우고 자신의 제1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바스티유 감옥 습격부터 시작된 10년에 걸친 프랑스 혁명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프랑스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쿠테타로 인해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나라 안의 권력 싸움을 끝내고 프랑스를 안정시켜 나갔습니다. 프랑스 은행을 세워 산업을 보호하고 경제를 부흥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출신을 따지지 않고 누구든지 실력 있는 사람은 관리로 임명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나폴레옹은 새로운 정책을 내세우며 자신만의 체제를 굳혀 나갔습니다. 나라 밖으로는 영국과 오스트리아에게 평화를 맺자고 제안 했으나 이를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눈 덮인 알스프를 넘어갔습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북 마렝고에 주둔하고 있던 오스트리아군을 무찌르고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1년뒤에는 영국과도 평화 조약을 맺어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법을 제대로 정리하여 법전을 편찬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제도로 완성하고 나라의 힘을 한데 모으려면 또 프랑스가 지배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통일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1804년에 나폴레옹 법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법전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법 앞에서 평등하며 개인의 자유는 보호하고 사유 재산은 존중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프랑스 혁명에서 이루어 낸 시민 사회의 중요한 원칙들을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 법에 따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법전은 다른 나라의 법을 만드는 데도 기준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나폴레옹 황제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멈춘 평화로운 시기에 나폴레옹이 펼친 여러 가지 개혁 정책에 프랑스 국민들은 힘껏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우쭐하며 유럽의 어는 군주보다도 더 큰 힘을 갖기를 바랬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은 국민 투표를 실시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나폴레옹은 왕관도 자신의 머리에 직접 섰습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됨으로써 프랑스는 왕이 있던 예전으로 되돌아간 셈이였습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이룩해 낸 프랑스 공화국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프랑스는 제1제정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지칠 줄 모르는 일벌레 황제로 변화였습니다. 쉬지 않고 보고서를 검토하고 군대 조직과 나라의 살림살이도 꼼꼼이 점검했습니다.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건축 공사를 벌이고 도로를 정비해 나갔습니다. 밖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를 점령하고 유렵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형 조제프는 에스파냐의 왕 동생 루이는 네덜란드의 왕 여동생 카롤린은 나폴리 여왕, 동생 제롬은 베트트팔렌 왕 등 자신으 ㅣ형제들가지 왕족으로 만들면서 세력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날로 커져가는 지배욕이 문제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 전체를 지배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으니깐요. 유럽의 거의 자신의 발밑에 둔 나폴레옹 이었지만 영국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는 강력한 넬슨 제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육지에서의 싸움에는 뛰어났지만 바다에서의 싸움에는 서툴렀습니다. 프랑스 함대는 영국 함대에게 번번이 패하였습니다. 영국은 강한 해군력을 앞세워 나폴레옹에게 끈질기게 맞섰습니다.
1805년 프랑스 함대는 에스파냐 앞바다에서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넬슨 제독은 프랑스 군의 총탄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후 나폴레옹은 무력으로는 영국을 무너뜨리기 힘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대륙 봉쇄령입니다. 1806년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의 나라들에게 영국과 절대로 무역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을 외톨이로 만든 다음 경제적으로 크게 손해를 보게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륙 봉쇄령에도 영국은 별 손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국의 공업 제품을 사 쓰던 유럽의 농업 국가들만 아쉽게 되었습니다. 한편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한 나라들은 처음에는 낡은 제도에서 해방시켜 준 나폴레옹을 환영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군의 횡포가 심해지고 세금까지 오르자 불만이 점점 쌓여 갔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자는 외침과 함께 나폴레옹에게 저항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에스파냐에서는 자기 나라 왕실을 제치고 나폴레옹의 형이 왕이 된 데다가 나폴레옹이 교황령을 빼앗아 프랑스 제국의 땅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자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에스파냐의 저항이 이어지자 나폴레옹 군대는 총과 칼을 앞세워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이렇게 나폴레옹도 결국 공포 정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몰락의 길을 앞당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나폴레옹은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걸쳐서 원망을 받는 황제가 되었으며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국가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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